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즈 올드린 (문단 편집) == 조명받지 못한 영웅 == 미국에서는 인지도가 있지만 미국 외의 국가에서는 그냥 암스트롱이랑 달에 같이 간 사람 정도의 인식만 있고 묻혀지는 경향이 있다. 특히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, 영화 [[세 얼간이]]의 등장인물인 비루 총장이 "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"라는 주장을 할 때 그 예를 든 잊혀진 2등 중 하나가 바로 버즈 올드린이었다. 그러나 이 사람은 경쟁에서 밀려 2등이 됐다고 할 수 없는 만큼 빗나간 예시일 듯하다. 물론 올드린의 모국인 미국에서는, 우주덕이 아닌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잘 알고 친숙하게 여긴다. 대표적으로 토이 스토리의 캐릭터 "[[버즈 라이트이어]]"의 경우 대놓고 올드린을 노리고 지은 이름이며, 대부분의 미국인들 또한 이 캐릭터를 보고 자연스럽게 올드린을 떠올렸다. 전설적인 아폴로 11호의 일원인데다가 밑에도 나오지만 귀환 이후 닐 암스트롱과 달리 적극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. 실제로 미국에서는 달 착륙이 자랑스러운 자국의 역사이니만큼 교과서와 아동용 과학 관련 책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루며, 암스트롱만큼은 아니지만 올드린도 자세히 언급을 한다. 한국을 포함한 미국 외 국가에서 묻히는 이유는 교과서나 아동용 교양도서에서는 달 착륙에 대해 1.소련과의 우주경쟁 2. 최초의 착륙자는 닐 암스트롱 3. One small step for a man, one giant leap for mankind 정도로만 다루고 넘어가기 때문이다. 게다가 최근에 와서는 올드린이 "트랜스포머 3" 등 영화나 방송에 자주 출연한 덕에 미국 외 국가에서도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. 오히려 진짜로 묻히는 인물은 아예 착륙조차 못했고 이름도 평범한 [[마이클 콜린스(우주비행사)|마이클 콜린스]]이다. 셋 다 교과서에서 다루긴 하지만, 아무래도 실제로 착륙했던 두 사람에 비해 사령선에만 틀어박혔던 콜린스는 이미지가 약한데다가, "암스트롱" "버즈"란 다소 특이한 이름에 비해 "마이클 콜린스"는 [[동명이인]]도 너무 많고 평범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.[* [[마이클]]은 미국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이며 [[콜린스]] 역시 매우 흔한 성이다. 한국으로 따지면 김민수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. 동명이인 중에서는 유명인들도 많다(아일랜드 독립운동가 [[마이클 콜린스(정치인)|마이클 콜린스]] 등).] 비록 2등이긴 했어도 '''실질적으로는 버즈 올드린이 암스트롱보다 훨씬 더 앞장서서 민간인들에게 달과 우주개발에 대해 홍보했다는 평가가 있다.''' 암스트롱은 달에 다녀온 뒤 엄청난 유명세와 음모론자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대학 교수로사 사실상 은둔생활을 한 반면에[* 심지어 암스트롱이 한 번 농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어 접합수술을 받은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.] 올드린은 영화나 방송 출연 및 저술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해왔다. 영국 언론인이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을 인터뷰한 후에 쓴 책 '문더스트'를 참고해 보시라. 어떻게 보면 역사책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너무 유명해져서 인생이 괴로워진 암스트롱[* 암스트롱은 X-15, X-20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며 동료 우주인들도 인정하는 미국 최고의 테스트 파일럿이었고 [[우주왕복선]] 연구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여론의 극성맞은 관심으로 인해 NASA에서 퇴직, 은거하며 한동안 업계를 떠나야 했고 오늘날에도 웬만한 하드코어 우주덕이 아니면 암스트롱의 업적은 '달'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만 인식되는 편이다.]보다 "적당히" 유명해져서 노년에 이른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며[* 2015년 9월에도 방한해 연세대 등에서 강연을 했다. 2018년에도 영화 퍼스트맨이 나오자 인터뷰를 하였다.] 살고 있는 올드린이 더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.[[2021년]] [[4월 28일]] 마이클 콜린스가 사망하면서 아폴로 11호 일원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. '인류 최초로 달에서 성찬식을 했다'는 것도 2등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하는 사실이다. 이 성찬식은 아폴로 8호가 성경을 읽은 후 종교색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여 당시엔 숨겼다가 자신의 저서 '달로부터의 귀환'에 실으면서 비로소 밝혀졌다. 심지어 인류 최초로 달에서 [[소변]]을 본 사람 역시 올드린이며, 기록에 남은 인류 최초의 우주에서 [[음주]]도 올드린이 최초로 하였다. 위에 쓰인 것처럼 [[성만찬]]의 목적으로 했다.[[https://www.history.com/news/buzz-aldrin-communion-apollo-11-nasa|#]] 사실 1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사에 가려진 비운의 주인공들은 그 이후에 달을 다녀온 이들, 즉 [[아폴로 12호]]부터 [[아폴로 17호]]까지의 우주비행사들이다. [[아폴로 13호]]는 사고로 달에 못간 대신에 성공적인 귀환으로 유명해져서 [[아폴로 13]]이란 영화도 나오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그런 것도 없다.[* 아폴로 13 영화에서도 한 번 성공하니까 바로 달 탐험에 관심이 시들해진 당시 분위기가 묘사되며, 사고가 난 뒤에 기자들이 [[짐 러블]]의 집에 몰려오자 러블 부인이 "달에 간다고 할 때는 관심도 안 주더니 다 죽게 생기니까 몰려오냐!"라고 성을 내기도 한다.][* 엄밀히 따지자면 아폴로 11호 이후 미션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덜 받은 것은 [[아폴로 12호]]라고 할 수 있다. [[아폴로 14호]]는 인류 최초로 달에서 [[골프]]를 친 미션으로, [[아폴로 15호]]는 '제네시스 록' 등 여러 과학적 의의를 가져서, [[아폴로 16호]]는 월면차 속도 최고기록으로, 그리고 [[아폴로 17호]]는 [[아폴로 계획]]의 마지막 달 탐사 미션으로 유명하지만 [[아폴로 12호]]는 딱히 내세울 특징들이 없었다. 그나마 억지로 집어넣은 14호와 16호에는 각각 [[앨런 셰퍼드]]와 [[존 영]]이라는 NASA 원로 우주비행사들이 참여해서라도 유명해졌지만, 12호는 그렇지도 않았다. 그나마 최초로 컬러 TV중계를 위해 가져간 카메라마저 태양과의 각도를 잘못 계산해 고장내버려 진짜 뭐라도 특출난 업적이 없긴하다.] 관련 서적들이 다들 아폴로 11호만 언급하니까 11호가 달에 갔다온 유일한 사례로 잘못 아는 사람들까지 있다. [[아폴로 계획 음모론]]이 오로지 아폴로 11호만 물고 늘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. [[6.25 전쟁]] 당시에는 공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